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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바꾸는 전통 직업

AI는 전통 먹 제조 방식을 재현할 수 있을까?

1. 전통 먹은 단순한 재료가 아닌 감각의 산물이다

전통 먹은 수묵화, 서예, 동양화 등 한국과 동아시아 문화예술에서 핵심적인 매체로 자리해왔다. 먹은 주로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과 아교를 반죽하여 틀에 찍어 굳히는 방식으로 제작되며, 이 과정은 단순한 공정이 아니라 정교한 감각과 노하우의 결과물이다. 불의 온도, 그을음의 밀도, 아교의 비율, 반죽의 습도, 건조 환경 등 모든 요소가 먹의 품질을 결정짓는다. 먹이 물에 갈렸을 때 농도, 색의 깊이, 갈림의 질감, 번짐의 속도, 향기까지도 제작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먹은 푸르스름하게 퍼지며, 어떤 먹은 먹색이 진하면서도 선명한 가장자리를 남긴다. 이러한 특성은 단지 공정의 수치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장인의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때문에 지금까지 먹 제조는 여전히 수작업 중심이며, 현대 기술로 완전하게 재현되기 어려운 전통 기술로 여겨져 왔다.

2. AI는 먹의 어떤 요소를 분석하고 재현할 수 있는가?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술이 재료공학과 전통공예 복원에 접목되면서, 먹 제조 방식 역시 데이터 기반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AI는 전통 먹의 제조 과정을 영상, 센서, 온도계, 습도계 등 다양한 기기를 통해 수치화하고, 반복 학습을 통해 그 특징을 분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나무 송진의 종류나 연소 시간에 따라 생기는 그을음 입자의 크기를 고해상도 이미징으로 분석하고,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먹의 번짐 패턴과 농도를 예측할 수 있다. 또한 아교의 비율과 반죽 방식이 잉크의 물성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모델링할 수 있다. AI는 이러한 수치들을 종합해 가장 이상적인 배합을 도출하고, 로봇 시스템을 통해 먹 반죽, 성형, 건조의 일관성을 확보한 제조 방식을 구현할 수 있다. 특히 연구기관에서는 AI를 통해 제작된 먹과 장인이 만든 전통 먹의 발색, 퍼짐, 냄새 등을 비교 분석하는 실험을 통해, 일정 수준까지는 AI도 전통 먹의 성질을 재현할 수 있다는 결과를 도출하고 있다.

3. 감각의 계승은 가능한가? AI가 넘지 못한 장인의 한계

그러나 AI가 수치와 공정으로 먹의 특성을 모방한다고 해도, 장인의 감각이 개입된 유연한 판단은 아직 완전히 재현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먹을 반죽할 때 손끝에서 느껴지는 밀도나 찰기의 정도, 건조 시점의 판단은 숫자로 설명하기 어렵다. 또, 기온과 습도가 갑자기 변할 경우 장인은 미묘한 손 조정으로 균형을 맞추지만, AI 시스템은 사전에 입력된 조건 외의 변수에 대해 적응력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먹은 단순한 필기 도구가 아니라 정신성과 예술적 기운을 담는 매개체로 여겨졌기 때문에, 장인은 먹의 향, 감촉, 번짐의 철학적 미감까지 고려해 제작한다. AI가 먹의 화학적 성분이나 시각적 특성은 재현할 수 있어도, 장인이 수십 년간 몸으로 익혀온 ‘감각’ 자체를 복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는 이러한 감각의 일부를 정량화해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장인의 지식을 후대에 전승하는 도구로서 매우 유용하다.

4. 전통 재료와 AI 기술의 융합이 열어주는 새로운 가능성

AI가 먹 제조 기술을 분석하고 재현함으로써, 전통 예술 재료에 대한 접근은 점차 변화하고 있다. 첫째, 기존에 장인만이 가능한 기술이었던 먹 제조법이 데이터로 정리되면서, 전수 시스템이 체계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교육기관이나 문화재 복원 연구소에서는 AI가 제안한 배합 공정과 실제 장인의 조정 방식을 병행하여 실험함으로써, 더 정밀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둘째, AI 기반의 먹 제조 시뮬레이션은 전통 수묵화를 배우는 학습자나 디지털 아트 분야에서도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예술가들은 AI가 만든 먹으로 작품을 제작하거나, VR·AR 콘텐츠에 실제 먹의 농담과 질감을 반영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셋째, AI가 먹의 물성 데이터를 활용해 현대적 색감이나 새로운 예술 재료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리고 있다. 이는 단지 전통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예술과 기술이 융합하는 창조적 흐름을 만들어내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궁극적으로 AI는 장인의 손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장인의 지식을 기록하고 이어주는 역할을 통해 전통 예술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도구로 진화하고 있다.

AI는 전통 먹 제조 방식을 재현할 수 있을까?